혼인무효를 다투고 싶다고 하시면서 진단서부터 떼어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병원 이름이 찍힌 서류 한 장이면 이야기가 끝날 것 같아서 진단서와 입퇴원확인서만 봉투에 담아 오시는 경우가 정말 많으세요. 그런데 상담을 시작하고 십 분쯤 지나면 여쭤볼 것이 계속 늘어납니다. 혼인신고를 하자는 이야기는 언제 어떻게 나왔는지, 신고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신고한 뒤에 두 분이 어떻게 지내셨는지를 여쭈면 대부분 답이 바로 나오지 않습니다.
혼인무효 입증은 병명을 밝히는 일이 아니라, 혼인신고를 하던 무렵에 어떤 상태였는지와 신고 전후로 어떤 생활이 있었는지를 함께 보여 주는 일입니다. 오늘 정리해 드릴 부산가정법원 2018드단216724 혼인무효확인 판결을 보시면 그 말씀이 분명해집니다. 이 판결에서 법원이 인정한 사실은 여섯 항목인데, 모두 날짜가 붙어 있습니다. 먼저 밝혀 둘 것이 있습니다. 이 사건 판결문에는 소송대리인 표시가 없어, 저희가 수행한 사건이 아니라 공개된 판결문을 읽고 정리해 드리는 내용입니다.
혼인무효를 다툴 때 필요한 것은 진단서 한 장이 아닙니다. 신고 당시 어떤 상태였는지, 신고를 어떻게 결정했는지, 신고 뒤에 어떻게 지냈는지가 같은 시간선 위에서 확인돼야 합니다.
진단서 한 장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진단서는 언제 어떤 진단으로 치료를 받았는지를 알려 줍니다. 거기까지입니다. 혼인신고를 하던 날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부부로 살기로 하고 신고한 것인지는 진단서에 적히지 않습니다. 병원 서류만 제출하면 재판부 앞에 그 이상 확인할 자료가 남지 않습니다.
이 판결에서 법원이 혼인의 합의가 없었다고 보면서 참작한 사정은 세 가지였습니다. 원고와 피고가 각자가 가진 정신질환으로 인해 혼인신고 당시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운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 교제한지 불과 3개월 만에 혼인신고를 하기에 이르렀고 신고를 전후하여 가족들에게 이를 알리거나 의논한 사실이 없다는 점, 신고 이후에도 결혼식을 올리거나 동거한 사실이 없어 혼인생활의 실체는 물론 외관조차 없다는 점입니다. 세 가지를 따로 떼어 낸 것이 아니라 함께 놓고 본 판단이었습니다.
첫 번째 사정만 잘라 읽으면 병이 있으면 혼인이 무효가 된다는 이야기로 들리기 쉽습니다. 그 오해는 그것대로 길게 다뤄야 할 이야기라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씀드릴게요.
준비하실 때 보셔야 할 것은 병명이 아니라 두 가지죠. 혼인신고를 하던 무렵에 어떤 상태였는지, 그리고 신고 전후로 두 분이 실제로 어떻게 지내셨는지입니다. 앞의 것은 병원 자료로 남고 뒤의 것은 생활 자료로 남습니다. 혼인무효 입증은 이 두 가지를 같이 놓을 때 비로소 이야기가 됩니다.
부산가정법원이 인정한 사실에는 모두 날짜가 붙어 있습니다

부산가정법원 2018드단216724 혼인무효확인 사건은 2019. 6. 14. 변론이 종결되고 2019. 7. 5. 판결이 선고됐습니다. 주문 첫 줄은 원고와 피고 사이에 2017. 5. 25. ○○구청장에게 신고하여 한 혼인은 무효임을 확인한다입니다. 당사자는 판결문에 원고 갑, 피고 을로만 표시되어 있어 두 사람이 각각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인정사실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원고는 2016. 3. 6.부터 2016. 5. 13.까지 조현병으로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습니다. 피고는 2016. 8. 8.부터 2016. 9. 19.까지 양극성 정동장애로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는데, 그 무렵 같은 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던 원고를 알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2017. 2.경부터 사귀기 시작했고, 각자의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2017. 5. 25. ○○구청장에게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이어지는 세 항목은 신고 이후에 관한 것입니다. 원고와 피고는 혼인신고 이후 결혼식을 하거나 동거를 한 사실이 없습니다. 원고는 통원치료를 받던 중에도 비현실적 사고, 판단력 저하 등의 증상을 보였고 2017. 6. 27. 이후에는 임의로 통원치료를 중단했으며, 2018. 3.경 증세가 악화되어 다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피고는 2016. 9. 19. 위 병원을 퇴원한 이후에도 계속하여 약물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여섯 항목을 나란히 놓고 보시면 공통점이 하나 보입니다. 전부 날짜가 붙는 사실입니다. 치료가 시작되고 끝난 날, 서로를 알게 된 무렵, 사귀기 시작한 무렵, 신고한 날, 치료를 중단한 날, 다시 입원한 무렵입니다. 법원이 혼인의 합의가 있었는지를 판단하면서 실제로 읽은 것은 이 날짜들의 순서였습니다.
법원이 든 조문은 민법 제815조 제1호 하나입니다.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를 혼인무효 사유로 정한 조항입니다. 판결문은 혼인의 합의를 당사자 사이에 부부관계로서 인정되는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할 의사 및 법률상 유효한 혼인을 성립하게 할 의사의 합치라고 적었습니다. 마음속 의사는 눈으로 볼 수 없으니, 그 무렵 있었던 일들을 순서대로 놓고 짐작하게 됩니다.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부분이 있습니다. 이 판결의 인정근거는 갑 제1 내지 11호증의 각 기재와 변론 전체의 취지라고만 적혀 있고, 열한 개 번호가 각각 어떤 서류였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래 내용은 이 사건에서 실제로 제출된 자료 목록이 아니라, 같은 종류의 사실을 남기려면 일반적으로 무엇을 챙기게 되는지에 관한 준비 방향으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혼인신고 전에 있었던 일은 무엇으로 남나요
신고 전후의 진료기록과 투약 내역은 병명을 확인하려고 보는 서류가 아닙니다. 신고하던 무렵에 어떤 상태였는지가 그 시기의 기록에 남아 있기 때문에 봅니다. 진단서는 병명과 입원 기간만 알려 주지만, 진료기록에는 그날그날 어떤 이야기가 오갔고 어떤 약이 얼마만큼 처방됐는지가 순서대로 적혀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법원은 원고가 통원치료를 받던 중에 보인 증상을 인정사실에 그대로 적었습니다.
혼인신고를 하자는 이야기가 언제 어떻게 나왔는지도 자료로 남습니다. 그 무렵 주고받은 문자와 메신저 대화, 통화 기록이 있습니다. 결혼식이나 살 집 이야기가 함께 오갔는지, 아니면 신고 이야기만 오갔는지가 그 대화에 그대로 남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이 교제한지 불과 3개월 만이라고 적을 수 있었던 것도 사귀기 시작한 시점과 신고한 날이 함께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혼인신고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여쭙습니다. 누가 서식을 준비했는지, 어디서 작성했는지, 증인란은 누가 채웠는지, 접수는 누가 했는지를 기억나시는 대로 적어 주시면 됩니다. 다만 이 사건 판결문에는 그 과정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 ○○구청장에게 혼인신고를 하였다고만 되어 있을 뿐입니다.
양가 가족에게 혼인을 어떻게 설명했는지는 이 판결이 직접 언급한 사정입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신고를 했고, 법원은 신고를 전후하여 가족들에게 알리거나 의논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참작 사정으로 적었습니다. 그런데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없었던 일을 보여 주는 것이라 정리하기가 오히려 까다롭습니다. 그 무렵 가족과 주고받은 연락, 가족이 모였던 날의 사진과 대화, 가족이 뒤늦게 알게 된 시점의 통화를 함께 놓아야 설명이 이어집니다.
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신고에 결혼식도 동거도 없었던 사건이 어떻게 다뤄지는지는 가족 몰래 한 혼인신고, 결혼식도 동거도 없었다면 무효가 되나요에 따로 정리해 뒀어요.
혼인신고 뒤의 생활은 무엇으로 확인되나요
혼인무효 입증에서 자주 놓치시는 쪽이 신고 이후입니다. 무효를 다투는 일이니 신고하기 전만 보면 될 것 같지만, 이 판결에서 법원이 세 번째로 든 사정은 신고 이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결혼식을 올리거나 동거한 사실이 없어 혼인생활의 실체는 물론 외관조차 없다는 점입니다.
신고한 뒤 두 분이 각각 어디서 지내셨는지는 주민등록초본과 임대차계약서, 관리비와 공과금 납부 내역으로 정리돼요. 생활비를 합쳐 썼는지 각자 썼는지도 계좌 거래 내역에 남습니다. 같이 살림을 꾸린 흔적이 없다는 사실은 말씀만으로는 정리되지 않고, 각자 자기 이름으로 살아온 서류가 나란히 놓일 때 보입니다.
같이 살 집을 알아보러 다닌 적이 있는지, 이사 날짜를 잡은 적이 있는지도 여쭙습니다. 계획만 있었고 실제로 옮기지 않았다면 그 사정도 그대로 적어 오시는 편이 나아요. 없던 일로 두었다가 상대방 주장에서 먼저 나오면 대응이 늦어집니다.
부부로 지냈는지는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대했는지에서도 드러납니다. 배우자 관계를 전제로 한 메시지와 통화가 있었는지, 경조사나 명절에 함께 다닌 기록이 있는지, 서로의 가족과 연락한 흔적이 있는지를 봅니다. 반대로 신고 이후 연락이 끊겼다면 마지막 연락이 언제 어떤 내용이었는지가 정리되어야 해요.
신고 이후 치료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같은 시기에 속한 사실입니다. 앞서 본 것처럼 원고가 임의로 통원치료를 중단한 2017. 6. 27.은 신고일에서 한 달쯤 지난 시점이고, 피고는 그 전부터 계속 약물치료를 받고 있었어요. 이런 날짜들은 따로 떨어져 있을 때는 그저 병원 기록이지만, 신고일 옆에 놓이면 그 무렵 두 사람이 어떤 상태로 지냈는지를 설명하는 사실이 됩니다.
흩어진 자료를 하나의 시간 순서로 모아야 합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린 자료들은 하나씩 떼어 놓으면 힘이 약합니다. 진료기록만 보면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뿐이고, 주민등록초본만 보면 따로 살았다는 사실뿐입니다. 이 판결이 보여 주는 것은 그런 사실 여러 개가 같은 시간 순서 위에 올라갔을 때 비로소 혼인의 합의가 있었는지에 관한 설명이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정리하실 때는 표를 만드실 것도 없습니다. 날짜와 그날 있었던 일을 한 줄씩 적어 내려가신 다음, 혼인신고일에 선을 하나 긋고 위아래로 나눠 보십시오. 위쪽에는 어떻게 알게 되었고 언제부터 만났으며 그 사이 치료가 어떻게 이어졌는지가, 아래쪽에는 결혼식과 동거가 있었는지, 어디서 지내며 생활비를 어떻게 썼는지, 연락이 언제 끊겼는지가 들어갑니다.
적다 보면 비어 있는 날짜가 반드시 나옵니다. 억지로 채우지 마시고 비워 둔 채로 가져오시는 편이 나아요. 기억이 확실하지 않은 일을 확실한 것처럼 적어 두면 나중에 서류와 어긋날 때 나머지 이야기까지 함께 의심받습니다. 불리해 보이는 사실도 빼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혼인무효 확인을 주위적으로 구하면서 이혼을 예비적으로 함께 구했고, 법원은 주위적 청구를 받아들이면서 예비적 청구에 관하여는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왜 두 가지를 함께 구하는지는 혼인무효를 먼저 구하고 이혼을 예비로 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에 정리해 뒀어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이 사건은 여러 사정을 함께 놓고 본 하급심 판단입니다. 결혼식과 동거가 없으면 혼인이 무효가 된다는 식으로 읽으시면 안 돼요. 혼인무효 입증은 사건마다 모아야 할 자료가 달라지고, 어떤 사실이 얼마만큼 무게를 갖는지도 그때그때 다릅니다. 상담에 오실 때는 결론을 미리 내려 오지 마시고 날짜부터 적어 오시면 됩니다.
• 혼인신고 전후의 진료기록·투약 내역과 진료 시기
• 혼인신고를 결정하게 된 대화와 신고서 작성·제출 경위
• 신고 이후의 주거와 생활비 지출 내역
• 배우자 관계를 전제로 오간 메시지나 통화가 있다면 그 기록
혼인무효는 자료가 흩어져 있을수록 설명이 약해지므로, 시간 순서로 묶는 작업을 상담에서 함께 합니다. 혼인신고의 효력이 문제 되는 사건은, 서울가정법원·대전가정법원 부장판사로 13년간 가사 사건을 맡은 윤지상 대표변호사가 재판부에서 신고 전후의 사정을 어떤 순서로 확인하는지 짚어 보고,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가사·형사 전문변호사인 노종언 대표변호사가 혼인무효·혼인취소·이혼 가운데 어느 청구가 맞는지 함께 검토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진단서만 있으면 혼인무효가 인정되나요
진단서는 언제 어떤 진단으로 치료를 받았는지만 알려 줍니다. 혼인신고를 하던 무렵에 어떤 상태였는지, 신고 전후로 두 사람이 어떻게 지냈는지는 진단서에 적히지 않습니다. 부산가정법원 2018드단216724 판결에서도 법원은 신고 당시의 상태 하나만 보고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교제 기간이 3개월이었다는 점, 신고를 전후해 가족들에게 알리거나 의논한 사실이 없다는 점, 신고 이후 결혼식도 동거도 없었다는 점을 함께 놓고 혼인의 합의가 없었다고 보았습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어떤 서류를 냈나요
판결문에는 인정근거가 갑 제1 내지 11호증의 각 기재와 변론 전체의 취지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열한 개 번호가 각각 무슨 서류였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인터넷 정리 글 가운데 이 사건에서 어떤 서류가 제출됐는지를 구체적으로 적어 둔 자료가 있다면 원문과 다르니 그대로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준비하실 때는 이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이 어떤 종류였는지를 보시고, 같은 종류의 사실을 남길 수 있는 자료를 찾으시는 편이 낫습니다.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떻게 확인하나요
없었던 일을 보여 주는 것이라 자료 하나로 정리되지는 않습니다. 그 무렵 가족과 주고받은 연락에 혼인 이야기가 없다는 점, 가족이 모였던 날의 사진이나 대화, 가족이 뒤늦게 알게 된 시점의 통화를 함께 놓으면 설명이 만들어집니다. 이 사건에서도 법원은 각자의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신고했다는 점을 인정사실에, 신고를 전후하여 가족들에게 알리거나 의논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참작 사정에 각각 적었습니다. 다만 가족이 언제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판결문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 판결을 제 사건에 그대로 대입해도 되나요
그렇게 읽으시면 곤란합니다. 이 판결은 2019. 7. 5. 선고된 하급심 판결이고 개별 사정을 함께 고려한 판단이어서, 조건이 비슷하면 언제나 같은 결론이 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제도는 바뀔 수 있으므로 지금 사건에 옮기기 전에 현행 규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따로 확인하셔야 합니다. 상담에서도 이 판결이 판단한 부분과 현재 규정을 나눠서 말씀드립니다. 두 가지를 섞어 읽으면 준비 방향이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 변호사가 직접 쓴 심화 칼럼 「혼인취소소송, 상대가 속였다고 모두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 이 주제를 법무법인 존재 블로그에서 더 깊이 확인해 보세요.